타이거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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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이거 우즈는 1975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미국의 프로 골프 선수이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1996년 프로로 전향한 후 나이키, 타이틀리스트 등과 광고 계약을 맺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7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으며, 통산 15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포함하여 PGA 투어에서 82승을 기록하며 샘 스니드와 함께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그는 2000년 US 오픈, 브리티시 오픈,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고, 2001년 마스터스 우승으로 4개 메이저 대회를 연속 우승하는 "타이거 슬램"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기량을 유지했으나, 이후 부상과 사생활 문제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2018년 투어 챔피언십 우승과 2019년 마스터스 우승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으나, 2021년 교통사고로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TGR 재단을 설립하여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고, 타이거 우즈 디자인을 통해 골프 코스를 설계하는 등, 골프 외적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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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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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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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엘드릭 톤트 우즈 |
별명 | 타이거 |
출생일 | 1975년 12월 30일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 |
키 | 185 cm |
몸무게 | 84 kg |
국적 | 미국 |
거주지 |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아일랜드 |
배우자 | 에린 노르데그렌 (2004년 결혼, 2010년 이혼) |
자녀 | 2명 |
대학 | 스탠퍼드 대학교 (2년) |
프로 데뷔 | 1996년 |
투어 | PGA 투어 (1996년 가입) |
프로 우승 | 110회 |
PGA 투어 우승 | 82회 (역대 공동 1위) |
유럽 투어 우승 | 41회 (역대 3위) |
일본 투어 우승 | 3회 |
아시아 투어 우승 | 2회 |
호주 투어 우승 | 3회 |
기타 우승 | 17회 |
메이저 대회 우승 | |
총 메이저 우승 | 15회 |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 | 1997년, 2001년, 2002년, 2005년, 2019년 |
US 오픈 우승 | 2000년, 2002년, 2008년 |
디 오픈 우승 | 2000년, 2005년, 2006년 |
PGA 챔피언십 우승 | 1999년, 2000년, 2006년, 2007년 |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 |
명예의 전당 ID | tiger-woods |
명예의 전당 헌액 년도 | 2021년 |
수상 내역 | |
하스킨스 상 | 1996년 |
PGA 투어 신인왕 | 1996년 |
PGA 투어 상금왕 |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3년 |
PGA 투어 올해의 선수 |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3년 |
PGA 올해의 선수 |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3년 |
바이런 넬슨 상 |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
바든 트로피 |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5년, 2007년, 2009년, 2013년 |
로레우스 세계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남자 선수 | 2000년, 2001년 |
PGA 투어 페덱스 컵 우승 | 2007년, 2009년 |
대통령 자유 훈장 | 2019년 |
기타 정보 | |
세계 랭킹 최고 순위 | 1위 |
상금 랭킹 최고 순위 (미국 남자) | 1위 (10회) |
2.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2. 1. 배경 및 가족
타이거 우즈는 1975년 12월 30일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레스에서[15] 얼 우즈[16]와 쿨티다 "티다" 우즈[17] 사이에서 태어났다.[18] 그는 외동이지만, 아버지의 첫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이부 형제 두 명과 이부 여동생 한 명이 있다.[18] 얼은 은퇴한 미국 육군 장교이자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였다. 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럽계와 미국 원주민 혈통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19][20] 쿨티다(née 푼사왓)는 태국 출신으로, 얼이 1968년 태국 근무 중에 만났다. 그녀는 태국, 중국, 네덜란드 혼혈이다.[21]
2002년 ESPN은 "기록에 따르면 그는 1/4 태국계, 1/4 중국계, 1/4 아프리카계 미국인, 1/8 코카서스계, 1/8 미국 원주민이다"라고 보도했다.[22] 타이거는 자신의 민족 구성을 "캐블리니아시안"(Caucasian, Black, American Indian, Asian의 음절 축약어로 그가 만든 용어)[23]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뿌리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프로로 전향한 후 계약한 나이키의 CM “Hello World”[297]에 출연하여 “이 나라(미국)에는 내 피부색 때문에 내가 라운딩할 수 없는 코스가 있다. 프로가 된 나에 대한 ‘준비’는 됐는가?”라는 내용이 전미에 충격을 주었다.
우즈의 이름인 엘드릭은 어머니가 얼(Earl)의 'E'와 쿨티다(Kultida)의 'K'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어주고자 선택한 것이다. 그의 미들 네임인 톤트는 전통적인 태국식 이름이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타이거'로도 알려진 남베트남군 부옹 당 풍 대령을 기리기 위해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었다.[24] 1996년 12월 30일 21세 생일을 계기로 개명 신청을 하여 “타이거(Tiger)”를 공식적인 미들 네임으로 하였다. “타이거(Tiger)”라는 별명은, 전우였던 베트남군 장교 응웬 티 풍(Nguyen T Phong) 대령이 베트남 전쟁 당시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 군복을 즐겨 입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작전 중 행방불명된 그에 대한 생환을 기대하고 재회를 바라는 마음을 아들의 이름에 담고 싶어 했던 아들의 부모의 뜻을 아들이 이어받았다고 한다.
우즈에게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골프팀에서 활동했고, 2012년 LPGA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를 하며 프로 선수가 된 조카, 셰이엔 우즈가 있다.[25]
스크래치 플레이어이기도 했던 아버지 얼 우즈의 지도를 받아 7개월이 되자 장난감으로 퍼터를 가지고 놀았으며, 보행기를 타고 다닐 때는 어디든 퍼터를 끌고 다녔다. 10개월에는 어린이용 높은 의자에서 스스로 내려와 짧게 만든 골프채를 향해 걸어가 스윙하는 시늉을 하는 등 골프를 시작했다. 두 살 때는 자신의 어깨 높이만 한 클럽을 사용했다. 이 무렵 전국 방송에 출연하는 등 남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유아 골퍼가 되었고, 세 살 때는 벙커샷 연습을 시작했다. 네 살 때는 SCJGA(남캘리포니아 주니어 골프 협회)에 가입하여 곧바로 '10세 미만' 클래스 9홀 경기에서 10세 어린이를 이겼다. 여덟 살 때는 70대 타수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 신자로 자라왔다.
2. 2. 초기 생애와 아마추어 골프 경력
타이거 우즈는 1975년 12월 30일,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얼 우즈(Earl Woods)는 흑인 미국인이자 미국 육군 특수부대(그린 베레) 출신 예비역 군인이었고, 어머니 쿤티다(Kultida)는 화교계 태국인이었다.[26]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주 오렌지군에서 성장했다.얼 우즈는 핸디캡이 한 자릿수였던 아마추어 골퍼이자 캔자스 주립 대학교 최초의 흑인 대학 야구 선수 중 한 명이었다.[26] 우즈는 아버지처럼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회전근 건이 파열된 후 그 꿈을 포기했다.[27] 얼 우즈는 로스앨러미토스 합동훈련기지 옆 해군 골프장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에, 타이거는 그곳에서 골프를 칠 수 있었다. 타이거는 롱비치의 파3 하트웰 골프장과 롱비치의 여러 시립 골프장에서도 골프를 쳤다.[28]
7개월 때부터 장난감 퍼터를 가지고 놀았고, 보행기를 타면서도 퍼터를 끌고 다녔다. 10개월에는 어린이용 높은 의자에서 스스로 내려와 짧게 만든 골프채를 스윙하는 시늉을 했다. 얼 우즈는 말도 못 하는 우즈에게 그림으로 클럽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두 살 때는 자신의 어깨 높이만 한 클럽을 사용했고, 전국 방송에 출연하는 등 남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유아 골퍼가 되었다. 세 살 때는 벙커샷 연습을 시작했고, 같은 해 9홀을 48타(11오버)로 돌았다.
1978년, 우즈는 ''마이크 더글러스 쇼''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코미디언 밥 호프와 퍼팅 대결을 펼쳤다. 다섯 살 때는 ''골프 다이제스트''와 ABC의 ''댓츠 인크레더블!''에 출연했다.[29] 일곱 살이 되기 전, 사이프러스에 있는 해군 골프장에서 열린 드라이브, 피치 앤 퍼트 대회 10세 미만 부문에서 우승했다.[30] 1984년, 여덟 살 때 주니어 월드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가장 어린 연령대인 9~10세 남자 부문에서 우승했다.[31] 같은 해 처음으로 80타 이하를 기록했다.[32] 그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주니어 월드 선수권 대회에서 여섯 번 우승했다.[33][34][35][36][37]
우즈의 아버지 얼은 타이거가 열한 살 때 처음으로 자신을 이겼으며, 그 이후로 매번 졌다고 한다.[38] 우즈는 열두 살 때 처음으로 규정 골프 코스에서 70타 이하를 기록했다.[39]
13세에 전국 규모 토너먼트인 빅 I에 처음 출전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당시 무명이었던 프로 골퍼 존 댈리와 한 조를 이루었고, 마지막 네 홀 중 세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댈리에게 간발의 차이로 졌다.[40] 십 대 초반, 벨에어 컨트리 클럽에서 클럽 회원들을 위한 클리닉을 하던 잭 니클라우스를 처음 만났다. 우즈의 기술과 잠재력은 니클라우스와 관중들을 감명시켰다.[41] 얼 우즈는 니클라우스의 경력 성과를 자세히 조사하여 어린 아들에게 그 기록을 깨라는 목표를 설정해 주었다.[39]
우즈는 열다섯 살 때 애너하임에 있는 웨스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가장 어린 미국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이 되었다. 이 기록은 2010년 짐 리우가 깨기 전까지 유지되었다.[42] 1991년 남부 캘리포니아 아마추어 선수상(2년 연속)과 골프 다이제스트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미국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타이틀을 방어하여 이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첫 PGA 투어 대회인 닛산 로스앤젤레스 오픈에 출전했지만 36홀 컷 탈락했다.[43][44] 그 해 골프 다이제스트 아마추어 선수상, 골프 월드 선수상, 골프위크 전국 아마추어 선수상을 수상했다.[43]
1993년, 우즈는 미국 주니어 아마추어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이 대회에서 3회 우승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45] 1994년 플로리다주 TPC 앳 쏘그래스에서 가장 어린 미국 아마추어 우승자가 되었는데, 이 기록은 2008년 대니 리가 깨기 전까지 유지되었다.[46][47] 같은 해 아이젠하워 트로피 세계 아마추어 골프 단체 선수권 대회(우승)와 1995년 워커컵(패배)에서 미국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다.[48][49]
1994년 18세의 나이로 웨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으로 선정되었다. 돈 크로스비 감독 밑에서 고등학교 골프팀에서 활약했다.[50] 우즈는 어렸을 때부터 말더듬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51]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아마추어 시절 전미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전미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전례 없는 3연패를 달성하여 “타이거스 트리플(Tigers Triple)”이라고 불린다.
2. 3. 대학 골프 경력
우즈는 대학 골프 강호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1994년 NCAA 챔피언인 스탠퍼드 대학교를 선택했다.[53] 1994년 가을 골프 장학금을 받고 스탠퍼드에 입학하여 그해 9월 첫 대학 대회인 제40회 윌리엄 H. 터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53] 그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대학 동료인 노타 베이 3세에게 "어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54] 1995년에는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 컨트리 클럽에서 미국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했고,[46] 퍼시픽-10 선수상, NCAA 올 아메리칸 퍼스트팀, 그리고 스탠퍼드 남성 신입생상(모든 종목을 포함하는 상)을 수상했다.[55][56]19세의 나이에 우즈는 첫 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1995년 마스터스에 참가하여 컷을 통과한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41위를 기록했다. 1996년 20세에 그는 미국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3연패를 달성한 최초의 골퍼가 되었고,[57] NCAA 개인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58]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아마추어 최고 점수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아마추어 합계 281타의 기록을 세웠다.[59] 그는 골프 업계에 프로로 전향하기 위해 2년 만에 대학을 중퇴했다. 1996년 우즈는 캘리포니아를 떠났는데, 2013년에 그는 그 이유가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 때문이라고 밝혔다.[60]
13세에 전국 규모의 토너먼트에 첫 출전했다. 당시 아직 무명이었던 존 데일리와 같은 조에서 라운드를 했고, 결국 1타 차로 패했지만, 남은 4홀 시점에서는 2타 리드하는 실력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기술적으로는 4세부터 골프 강사 루디 두랑의 지도를 받았고, 10세부터 17세까지는 존 안셀모에게 사사했다.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1992년 「닛산 오픈」에서 PGA 투어 대회에 첫 출전했다. 아마추어 시절 전미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 전미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전례 없는 3연패를 달성하여 “타이거스 트리플”이라고 불린다.
3. 프로 경력
우즈는 1996년 8월 20세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하여 즉시 나이키와 타이틀리스트와 광고 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이 계약은 골프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높은 후원 계약으로 여겨졌다.[61][62]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1996년 올해의 스포츠맨 및 PGA 투어 신인상으로 선정되었다.[63] 1997년 4월 13일, 그는 신기록을 세우며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21세의 나이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64] 두 달 후, 그는 세계 골프 랭킹에서 1위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65] 1998년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우즈는 1999년 시즌에 PGA 선수권 대회를 포함하여 8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1974년 조니 밀러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66][67]
우즈는 심한 근시였으며, 시력은 11디옵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1999년 성공적인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고,[68] 곧바로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그의 시력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하여 두 번째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다.[69] 2000년 우즈는 PGA 투어에서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1948년 벤 호건 이후 최장 기록이었다. 그중 하나는 미국 오픈이었는데,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라고 묘사한 이 대회에서 9개의 대회 기록을 경신하거나 타이를 기록하며 15타 차이로 우승하여 80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70] 24세의 나이로 그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최연소 골퍼가 되었다.[71] 2000년 말, 우즈는 출전한 20개의 PGA 투어 대회 중 9개에서 우승했고 투어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 타수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어 두 번이나 이 영예를 안은 유일한 선수가 되었고, 골프 다이제스트지는 그를 역대 12위 골퍼로 평가했다.[72]
우즈가 2001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 그는 같은 해가 아니더라도 4개의 메이저 프로 골프 타이틀을 연속으로 우승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이 업적은 "타이거 슬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3] 2001년과 2002년의 뛰어난 활약으로 투어를 지배했지만, 우즈의 경력은 주춤했다.[66][74] 그는 2003년이나 2004년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2004년 9월 비제이 싱이 세계 골프 랭킹에서 우즈를 제치면서 우즈의 264주간 1위 기록이 종료되었다.[75]
우즈는 2005년에 6개의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1년 상반기 동안 싱과 1위 자리를 주고받은 후 7월에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다.[76]
우즈는 2006년에 두 개의 PGA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등 강력한 출발을 보였지만, 4월에 열린 마스터스 선수권 대회에서 5번째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다.[77] 5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우즈는 투어에서 휴식을 취했고, 윙드 풋 골프 클럽에서 열린 미국 오픈에 복귀했지만 컷을 놓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78] 그러나 그는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여 시즌 말까지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즌 종료 시점에 우즈는 총 54승을 거두었는데, 이 중 메이저 대회 우승은 12번이었고, 11시즌 동안 총 승수와 메이저 우승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79]
우즈는 2007년과 2008년 초반까지 뛰어난 활약을 이어갔다. 2008년 4월 무릎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투어에 참가하지 못했다.[80] 우즈는 2008 미국 오픈에 복귀하여 첫날 고전했지만, 결국 로코 메디에이트와의 18홀 플레이오프 이후 극적인 갑작스런 죽음의 승리를 거머쥐었고, 메디에이트는 "이 남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일들을 한다"라고 말했고, 케니 페리는 "그는 한쪽 다리로 모든 사람을 이겼다"라고 덧붙였다.[81] 이틀 후, 우즈는 이전에 밝혀진 것보다 무릎 손상이 더 심각하여 시즌 잔여 경기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이는 미국 오픈 경기력에 대한 더 큰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우즈는 이를 "내가 이룬 가장 위대한 챔피언십"이라고 불렀다.[82] 우즈가 빠진 동안 시즌 잔여 기간의 텔레비전 시청률은 2007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83]
우즈는 2009년 골프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복귀를 했고,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의 복귀에는 2009 프레지던츠컵에서의 화려한 경기가 포함되었지만, 2004년 이후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84] 2009년 말 그의 불륜이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받은 후(아래 자세한 내용 참조), 우즈는 12월에 무기한 골프 경기에서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했다.[231] 2010년 2월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는 잘못했고 어리석었다"라고 말하며 텔레비전으로 사과했다.[237] 이 기간 동안 여러 회사들이 우즈와의 후원 계약을 해지했다.[232]
우즈는 4월 2010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4위를 기록하며 경기에 복귀했다.[85] 그는 마스터스 이후 퀘일 홀로우 챔피언십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4라운드에서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86] 얼마 후, 2003년부터 우즈의 코치였던 행크 헤이니가 사임했다. 8월 우즈는 션 폴리를 헤이니의 후임으로 영입했다. 시즌 나머지 기간 우즈는 프로로 전향한 이후 처음으로 단 한 번의 대회에서도 우승하지 못하는 등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세계 랭킹 2위로 마무리했다.
2011년 우즈의 성적은 계속해서 부진했고, 이는 그의 랭킹에 영향을 미쳤다. 3월 7위로 떨어진 후, 그는 2011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4위를 기록하며 5위로 복귀했다.[87] 마스터스에서 입은 다리 부상으로 PGA 투어 여름 경기에 여러 차례 불참했다. 7월 그는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를 해고했고(윌리엄스는 해고에 충격을 받았다), 조 라카바를 고용할 때까지 친구인 브라이언 벨을 임시 캐디로 고용했다.[88] 8월 토너먼트 경기에 복귀한 후에도 우즈는 계속해서 부진했고, 그의 순위는 점차 58위까지 떨어졌다.[89] 그는 11월 중순 에미리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서 3위를 차지한 후 50위로 올랐고, 12월 쉐브론 월드 챌린지에서 우승하며 무관의 굴레를 벗어났다.[89][90][91]
우즈는 2012년 시즌을 아부다비 HSBC 골프 챔피언십과 AT&T 페블 비치 내셔널 프로암 두 개의 대회로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부진했다. WGC-액센추어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에서 5피트 퍼팅을 놓치며 2라운드에서 탈락한 후,[92] 우즈는 퍼팅 기술을 수정했고 혼다 클래식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PGA 투어 경력에서 가장 낮은 최종 라운드 점수를 기록했다. 또 다른 다리 부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즈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2009년 9월 BMW 챔피언십 이후 PGA 투어 첫 승이었다. 몇 차례 부진한 경기 후, 우즈는 6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PGA 투어 73번째 우승을 거두며 잭 니클라우스와 PGA 투어 최다 승리 공동 2위를 기록했고; 한 달 후, 우즈는 AT&T 내셔널에서 우승하여 샘 스니드(PGA 투어 82승)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93] [94]
2013년 우즈는 다시 한번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1월, 그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4타 차이로 우승하며 PGA 투어 75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이 대회에서 7번째 우승이었다.[95] 3월에는 WGC-캐딜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하며 7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2009년 이후 첫 WGC 타이틀을 포함해 17번째 WGC 타이틀을 획득했다.[96] 2주 후, 그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며 이 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8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세계 랭킹 1위에 복귀했다.[97] 이러한 업적을 기념하여 나이키는 "승리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광고 문구를 사용한 광고를 런칭했다.[98]
2013 마스터스 토너먼트 기간 중 우즈는 세 번째 샷이 핀에서 튕겨 나가 물에 빠진 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심코 불법 드롭을 했다고 인정한 후 실격 위기에 처했다. ESPN과의 텔레비전 영상 검토 후, 우즈는 드롭에 대해 2타 페널티를 받았지만 실격되지는 않았다.[99] 그는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우즈는 2013년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이 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2013 시즌 네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이는 프로 경력에서 가장 빠른 4승 기록이었다.
우즈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입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2013 미국 오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3오버파로 경기를 마치면서 프로 선수로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우승자 저스틴 로즈보다 12타 뒤처졌다.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휴식을 취하면서 그린브라이어 클래식과 자신의 AT&T 내셔널에 불참한 후, 그는 머필드에서 열린 오픈 챔피언십에 복귀했다. 일주일 내내 우승 경쟁을 벌였고 최종 라운드를 리 웨스트우드보다 2타 뒤진 채 시작했지만, 그린 속도에 어려움을 겪으며 3오버파 74타를 기록해 6위에 머물렀고, 최종 우승자인 필 미켈슨보다 5타 뒤처졌다. 2주 후, 우즈는 WGC-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시즌 5번째 우승이자 이 대회 15년 역사상 8번째 우승을 거두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2라운드 61타는 PGA 투어에서 그의 최고 기록과 일치했고, 마지막 홀에서 짧은 버디 퍼팅을 놓치지 않았다면 59타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7타 차이로 앞서 나갔고, 토너먼트 종료까지 이 우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오크 힐 컨트리 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우즈는 결코 우승 경쟁을 벌이지 못했고, 2013년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다섯 번째 시즌이 되었으며 2013년 네 개의 메이저 대회 중 두 개에서만 우승 경쟁을 벌였다.
2014년 부진한 출발 후, 우즈는 혼다 클래식 최종 라운드 중 부상을 당해 대회를 마치지 못했다. 그는 13번 홀 이후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기권했다.[100] 그는 이후 WGC-캐딜락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최종 라운드 대부분에서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2014년 3월 말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불참해야 했고,[101] 허리 수술을 받은 후 4월 1일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102] 우즈는 6월 퀵 론스 내셔널에 복귀했지만, 그 주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고전했고 컷을 놓쳤다. 다음으로 8년 전 우승을 차지했던 호일레이크에서 열린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우즈는 1라운드에서 훌륭한 69타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 합류했지만, 금요일 77타를 기록했고 결국 69위를 기록했다.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4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2014년 8월 25일, 우즈와 스윙 코치 션 폴리는 결별했다. 폴리와 함께한 4년 동안 8승을 거두었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은 없었다. 그는 이전에 하먼과 함께 8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고 헤이니와 함께 6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 우즈는 현재 스윙 코치를 대체할 시간표가 없다고 말했다.[103]
2015년 2월 5일, 우즈는 또 다른 허리 부상으로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기권했다.[104] 우즈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이전 수술과는 관련이 없으며 허리가 치유될 때까지 골프를 쉬겠다고 밝혔다.[105] 그는 마스터스에 복귀하여 17위를 기록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우즈는 클럽이 나무뿌리에 맞으면서 손목을 다쳤다. 그는 나중에 뼈가 손목에서 빠져나왔지만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라운드를 마쳤다고 말했다.[106] 그런 다음 우즈는 2015 미국 오픈과 오픈 챔피언십에서 컷을 놓쳤는데, 이는 우즈가 연속 메이저 대회에서 컷을 놓친 최초의 사례였고 두 번 모두 순위표 하단에 근접했다.[107] 그는 8월 2일 퀵 론스 내셔널에서 18위를 기록했다.[108] 2015년 8월 말, 우즈는 윈덤 챔피언십에서 13언더파로 대회를 마치며 우승자보다 4타 뒤진 10위를 기록했다.[109] 우즈는 자신이 여전히 허리 수술에서 회복 중이라는 추측에 대해 간략하게 "그냥 엉덩이"라고만 언급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110]
우즈는 2015년 9월 16일 허리 수술을 받았다. 2016년 3월 말, 그는 수술에서 회복하는 동안 마스터스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111] 그는 허리 문제로 인해 2014 마스터스에도 불참했다.[112] 그는 성명에서 "나는 분명히 진전을 이루고 있으며, 얼마나 멀리 왔는지에 대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쟁적인 골프에 복귀할 시점은 아직 없다."[113] 그러나 그는 2016년 4월 5일 마스터스 챔피언 디너에 참석했다.[114] 그는 경력 처음으로 허리 문제로 인해 1년 동안 모든 메이저 대회에 불참했다. 2016년 10월 그는 PBS의 찰리 로즈에게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타이틀 18개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고 말했다.[115] 우즈는 2016년 12월 허리 수술을 받고 15개월 동안 투어에서 멀어졌다. 그는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서 경쟁적인 골프에 복귀했다.[116]
우즈의 허리 문제는 2017년에도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1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컷을 놓쳤고 2월 3일 두바이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기권했다. 3월 31일 우즈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의사의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7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우즈는 재활에 만족하지만 "토너먼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117][118] 우즈는 이후 친구들에게 "나는 끝났다"고 말했다.[119] 4월 20일, 우즈는 허리와 다리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2014년 이후 네 번째 허리 수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회복에는 최대 6개월이 걸리며, 우즈는 나머지 기간 동안 프로 골프를 치지 않게 된다.[120] 우즈는 바하마에서 열린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서 경쟁적인 골프에 복귀했다. 그는 69–68–75–68타를 기록하며 9위를 차지했다. 그의 세계 랭킹은 1,199위에서 668위로 올랐는데, 이는 그의 경력에서 세계 랭킹의 가장 큰 상승폭이었다.
2018년 3월 11일, 그는 플로리다에서 열린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1타 차이로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3년 이후 PGA 투어에서 처음으로 5위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121] 그는 이어 2018 오픈 챔피언십에서 5언더파로 6위를 기록했다.[122]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2018 PGA 챔피언십에서 우즈는 우승자인 브룩스 켑카보다 2타 뒤진 2위를 차지했다. 이는 2009년 (2009 PGA 챔피언십 2위)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이었고, 세계 랭킹 26위로 올라섰다. 그의 최종 라운드 64타는 메이저 대회에서 그의 최고 기록이었다.[123][8]
우즈는 2018년 9월 23일 PGA 투어 경력 80번째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스트 레이크 골프 클럽에서 열린 시즌 종료 투어 챔피언십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두었고 이 대회에서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65–68–65–71타를 기록하며 빌리 호르셸보다 2타 차이로 우승했다.[124]
2019년 4월 14일, 우즈는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11년 만의 메이저 챔피언십 우승이자 전체 15번째 메이저 우승이었다. 그는 13언더파로 더스틴 존슨, 잰더 샤우펠레, 브룩스 켑카보다 1타 차이로 우승했다.[125] 43세의 나이에 그는 1986년 우승했던 잭 니클라우스(46세) 이후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두 번째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126] 2019년 8월 우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골 손상을 수리하기 위한 무릎 수술을 받았고 투어 챔피언십에서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우즈는 성명에서 자신이 걷고 있으며 10월 일본으로 여행하고 경기에 출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127]
우즈는 2019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PGA 투어 대회인 조조 챔피언십에서 2020년 PGA 투어 첫 대회에 출전했다. 우승을 놓고 챔피언십과 같은 코스에서 일주일 전에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던 스킨스 게임에서 우즈는 비가 온 후 열린 토너먼트의 모든 라운드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히데키 마쓰야마보다 3타 차이로 승리했다.[128] 이 승리는 투어에서 우즈의 82번째 우승으로, PGA 투어 역대 최다 승리 기록인 샘 스니드와 동률을 이루었다.[129][130]
2020년 12월 우즈는 다섯 번째 허리 미세 디스크 절제술을 받았다.[131] 이 수술은 압력이 가해진 디스크 파편을 제거하여 신경을 압박하고 PNC 챔피언십에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우즈는 2021년 자동차 사고 이후 첫 프로 토너먼트인 2022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경기에 복귀했다. 그는 컷을 통과했고 13오버파로 4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우승자인 스코티 셰플러보다 23타 뒤처진 것이다.[132]
2022년 8월 우즈, 로리 맥길로이, 마이크 맥카를리 그리고 PGA 투어는 6개 팀으로 구성된 가상 골프 리그인 TGL을 발족했다고 발표했다.[133] 2023년 11월 우즈는 데이비드 블리처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주피터 링크스 골프 클럽의 공동 소유주 겸 선수임을 밝혔다.[134]
3. 1. 프로 전향 및 초기 경력 (1996-1998)
타이거 우즈는 1996년 8월, 20세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하여 나이키, 타이틀리스트와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61][62] 이 계약들은 당시 골프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높은 후원 계약으로 평가받았다.[61][62] 프로 전향 직후, 우즈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1996년 올해의 스포츠맨 및 PGA 투어 신인상을 수상했다.[63] 1996년 10월에는 갑자기 2승을 거두며 세계 랭킹 33위로 급상승했고, 12월 30일, 21세 생일에 "''Eldrick Tiger Woods''"로 공식 개명했다.1997년 4월 13일, 우즈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 21세의 나이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64] 이때 전년도 우승자인 닉 폴드로부터 그린 재킷을 받았다.[275] 두 달 후, 그는 세계 골프 랭킹 1위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65] 21세의 나이로 PGA 투어 사상 최연소 상금왕에 등극했다. 1998년에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11월에는 "카시오 월드 오픈"에서 일본 투어에 처음 출전하여 15위를 기록했다. 1999년 시즌에는 PGA 선수권 대회를 포함하여 8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룩했다.[66][67]
우즈는 심한 근시(11디옵터)로 인해 1999년에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고,[68] 이후 바로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 2. 전성기 (1999-2002)
우즈는 1996년 8월 20세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하여 즉시 나이키와 타이틀리스트와 광고 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이 계약은 골프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높은 후원 계약으로 여겨졌다.[61][62]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1996년 올해의 스포츠맨 및 PGA 투어 신인상으로 선정되었다.[63] 1997년 4월 13일, 그는 신기록을 세우며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21세의 나이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64] 두 달 후, 그는 세계 골프 랭킹에서 1위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65] 1998년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우즈는 1999년 시즌에 PGA 선수권 대회를 포함하여 8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1974년 조니 밀러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66][67]우즈는 심한 근시였으며, 시력은 11디옵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1999년 성공적인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고,[68] 곧바로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그의 시력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하여 두 번째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다.[69] 2000년 우즈는 PGA 투어에서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1948년 벤 호건 이후 최장 기록이었다. 그중 하나는 미국 오픈이었는데,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라고 묘사한 이 대회에서 9개의 대회 기록을 경신하거나 타이를 기록하며 15타 차이로 우승하여 80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70] 24세의 나이로 그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최연소 골퍼가 되었다.[71] 2000년 말, 우즈는 출전한 20개의 PGA 투어 대회 중 9개에서 우승했고 투어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 타수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어 두 번이나 이 영예를 안은 유일한 선수가 되었고, 골프 다이제스트지는 그를 역대 12위 골퍼로 평가했다.[72]
2000년 2000년 PGA 투어에서 US 오픈, 브리티시오픈, PGA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대회 3연승(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는 1953년 벤 호건 이후 47년 만의 쾌거였다. PGA 투어에서 최고 기록인 연간 9승을 기록했으며, 제1회 로리우스 스포츠 어워드 남자 최우수 선수상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 상을 수상했다. 전년 8월 말 NEC 인비테이셔널부터 2월 AT&T 페블 비치 내셔널 프로암까지 PGA 투어 출전 대회 6연승을 달성했다.
우즈가 2001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 그는 같은 해가 아니더라도 4개의 메이저 프로 골프 타이틀을 연속으로 우승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이 업적은 "타이거 슬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3]
2001년 2001년 4월 8일, 마스터스에서 4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 대회 4연승을 달성했지만, 2년에 걸친 기록이었기에 “타이거 슬램”이라고 불렸다.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시즈오카현고텐바시의 “태평양 클럽 고텐바 코스”에서 개최된 세계 골프 선수권 대회의 EMC 월드컵에 데이비드 듀발과 함께 출전했다(이 방일을 계기로 우즈의 공식 웹사이트가 일본어판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2001년과 2002년의 뛰어난 활약으로 투어를 지배했지만, 우즈의 경력은 주춤했다.[66][74] 그는 2003년이나 2004년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2002년, 마스터스와 US 오픈에서 우승했다. 마스터스 대회 연승은 1989년과 1990년 대회를 연승한 닉 팔도 이후 12년 만이며, 대회 역사상 세 번째 기록이었다. 11월에는 던롭 페닉스 토너먼트에 4년 만에 두 번째로 출전했다.
2004년 9월 비제이 싱이 세계 골프 랭킹에서 우즈를 제치면서 우즈의 264주간 1위 기록이 종료되었다.[75]
3. 3. 슬럼프와 재기 (2003-2009)
우즈는 2003년과 2004년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66][74] 2004년 9월 비제이 싱이 세계 골프 랭킹에서 우즈를 제치면서 우즈의 264주간 1위 기록이 종료되었다.[75]2005년에 6개의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1년 상반기 동안 싱과 1위 자리를 주고받은 후 7월에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다.[76]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네 번째 우승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 그랜드 슬램(Double Grand Slam)”을 달성했다.[130] 11월 “던롭 페닉스 토너먼트”에서 요코오 요루와의 플레이오프(4홀)를 제압하고 2연패를 달성했다. 5월 둘째 주 “바이런 넬슨 클래식”에서 예선 탈락을 기록하며, 연속 예선 통과 기록이 142에서 멈추었다.
2006년에 두 개의 PGA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등 강력한 출발을 보였지만, 4월에 열린 마스터스 선수권 대회에서 5번째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다.[77]
5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78] US 오픈에서 예선 탈락하며, (프로 전향 후) 1997년 마스터스 이후 계속 이어온 메이저 대회 연속 예선 통과 기록이 37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여 7월 23일,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79]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의 연속 우승은 1982년과 1983년 대회를 연속 우승한 톰 왓슨 이후 23년 만이었다. 8월 6일 “뷰익 오픈” 우승으로 30세 7개월 만에 PGA 투어 통산 50승을 달성했다. 8월 20일, PGA 챔피언십에서 6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메이저 대회 12승을 기록하며 월터 헤이건을 제치고 단독 2위에 올랐다.
2007년, 액센추어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닉 오헌(오스트레일리아)에게 패하며, 전년도 디 오픈 챔피언십부터 이어온 연승 행진이 7에서 멈추었지만, PGA 투어 출전 대회 연속 우승 기록은 경신했다. 6월 18일 첫째 딸이 태어났다. 7월, 자신이 주최자가 된 공식 대회(AT&T 내셔널)를 개최했다. 8월 PGA 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부터 시작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3차전인 “BMW 챔피언십”에서 투어 60승을 달성하며, 페덱스컵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2008년,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마스터스 준우승 직후, 2007년 디 오픈 챔피언십부터 왼쪽 무릎 통증을 겪어 수술을 받았다.[80] 복귀전이었던 US 오픈에서 로코 메디에이트와의 접전(72홀 + 18홀 플레이오프 + 1홀 서든데스 = 총 91홀) 끝에 승리하며 32세 6개월 만에 "트리플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81] 이로써 PGA 투어 우승 횟수도 "65승"이 되어 벤 호건을 제치고 단독 3위에 올랐다. 이후 왼쪽 무릎 재수술을 받고 남은 경기에 모두 불참하게 되었다.[82]
2009년 2월 8일 둘째 아들인 장남이 태어났다.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8개월 만에 투어에 복귀하여[84] 3월 말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7월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예선 탈락하며 2006년 US 오픈 이후 3년 만에, 프로 생활 5번째 예선 탈락을 경험했지만, 그 2주 후 부익 오픈, 3주 후 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연속 우승을 거두며 PGA 투어 통산 "70승"을 달성했다. 그 다음 주 PGA 챔피언십에서는 2위에 그치며 5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과거 메이저 대회에서 3일째 종료 시점에 선두였을 경우 승률은 100%였지만, 처음으로 승리를 놓치는 결과를 맞이했다.
3. 4. 스캔들과 부상 (2010-2017)
2009 프레지던츠컵에서의 화려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우즈는 2004년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84] 2009년 말, 우즈의 불륜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그는 12월에 골프 경기에서 무기한 휴식을 선언했다.[231] 2010년 2월, 우즈는 "나는 잘못했고 어리석었다"라며 텔레비전으로 사과했다.[237] 이 기간 동안 여러 회사들이 우즈와의 후원 계약을 해지했다.[232]우즈는 2010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4위를 기록하며 복귀했지만,[85] 이후 퀘일 홀로우 챔피언십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4라운드에서 부상으로 기권했다.[86] 2003년부터 우즈의 코치를 맡았던 행크 헤이니가 사임하고, 8월에 션 폴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프로 전향 이후 처음으로 우즈는 그 해 어떤 대회에서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세계 랭킹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1년에도 우즈의 부진은 계속되었고, 그의 랭킹은 점차 하락했다. 마스터스에서 입은 다리 부상으로 인해 PGA 투어 여름 경기에 불참했다. 7월에는 오랜 캐디였던 스티브 윌리엄스를 해고하고,[88] 조 라카바를 고용하기 전까지 친구인 브라이언 벨을 임시 캐디로 기용했다. 11월 중순 에미리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서 3위를 차지하며 50위로 복귀했고,[89] 12월 쉐브론 월드 챌린지에서 우승하며 무관의 굴레를 벗어났다.[91]
2012년, 우즈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며 2009년 9월 이후 PGA 투어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PGA 투어 73번째 우승을 거두며 잭 니클라우스와 공동 2위가 되었고,[93] 한 달 후 AT&T 내셔널에서 우승하며 샘 스니드에 이어 단독 2위가 되었다.[94]
2013년, 우즈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4타 차 우승으로 PGA 투어 75승을 달성했다.[95] WGC-캐딜락 챔피언십과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랭킹 1위에 복귀했다.[97] 마스터스에서는 불법 드롭 논란에도 불구하고 4위를 기록했다.[99]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시즌 4승을 기록, 프로 경력 중 가장 빠른 페이스를 보였다.
하지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입은 팔꿈치 부상으로 미국 오픈에서 부진했고, 2013년은 메이저 대회 우승 없이 마무리되었다. 2014년, 우즈는 혼다 클래식 최종 라운드 중 허리 부상으로 기권했고,[100] 허리 수술을 받은 후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마스터스에 불참했다.[102] 퀵 론스 내셔널에서 복귀했으나 컷 탈락했고, 오픈 챔피언십에서는 69위를 기록했다. 2014 PGA 챔피언십에서도 컷 탈락하며 부진을 이어갔다. 8월 25일, 우즈는 스윙 코치 션 폴리와 결별했다.[103]
2015년 2월, 우즈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또다시 허리 부상으로 기권했다.[104] 마스터스에 복귀하여 17위를 기록했지만, 미국 오픈과 오픈 챔피언십에서 연속으로 컷 탈락했다.[107]

2015년 9월 16일, 우즈는 허리 수술을 받았다.[111] 2016년에는 허리 문제로 모든 메이저 대회에 불참했다. 2016년 12월, 우즈는 히어로 월드 챌린지를 통해 복귀했다.[116]
2017년에도 허리 문제는 계속되었다. 1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컷 탈락했고, 2월 두바이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기권했다. 4월 20일, 우즈는 2014년 이후 네 번째 허리 수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120] 같은 해, 불분명한 운전으로 인해 알코올 또는 약물 영향 하 운전 혐의로 체포되었는데,[276] 실제로는 음주가 아닌 복용한 약물 (바이코딘)의 영향이었다.[277]
3. 5. 부활과 현재 (2018- )
타이거 우즈는 2018년에 본격적으로 경기에 복귀하여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고,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는 6위에 오르며 부활을 알렸다.[122] 2018 PGA 챔피언십에서는 2위를 차지하며 세계 골프 랭킹을 26위까지 끌어올렸다.[123][8] 2018년 9월 23일에는 투어 챔피언십에서 5년 만에 우승[278]을 거머쥐며 세계 골프 랭킹을 13위까지 회복했다.[124]2019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2005년 대회 이후 14년 만에 5번째 우승이자 11년만의 메이저 챔피언쉽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 PGA 투어 통산 81승[279]을 달성했다.[125] 이로써 세계 골프 랭킹 6위에 오르며 5년 만에 톱 10에 진입했다.[126] 10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ZOZO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미국 PGA 투어 통산 82승[281]을 거두며 샘 스니드와 PGA 투어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웠다.[128][129][130]
2020년에는 COVID-19의 영향으로 투어가 중단되면서 우승은 없었다. 5월에는 필 미컬슨과 자선 경기를 치러 승리했다.[282] 2020년 12월 우즈는 다섯 번째 허리 미세 디스크 절제술을 받았다.[131]
2021년 2월,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283] 사고 당시 시속 140km로 운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284] 긴 재활 끝에 12월 PNC 챔피언십에 아들과 함께 출전했다.[286]
2022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508일 만에 투어에 복귀하여 47위를 기록했다.[287] 5월에는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오른쪽 다리 통증으로 기권했다.[288] 같은 달,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거액의 참가 제안을 거절했다.[289]
2024년 1월, 27년간 지속해 온 나이키와의 후원 계약 종료를 발표했다.[290] 2022년 8월 우즈는 로리 맥길로이등과 함께 가상 골프 리그인 TGL을 발족한다고 발표했다.[133] 2023년 11월 우즈는 주피터 링크스 골프 클럽의 공동 소유주 겸 선수임을 밝혔다.[134]
4. 주요 대회 성적
wikitext
대회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
마스터스 | T41LA | 컷 | 1 | T8 | T18 | 5 | 1 | 1 | T15 | T22 | 1 | T3 | T2 | 2 | T6 | T4 | T4 | T40 | T4 | 불참 | T17 | 불참 | 불참 | T32 | 1 | T38 | 불참 | 47 | 기권 |
US 오픈 | 기권 | T82 | T19 | T18 | T3 | 1 | T12 | 1 | T20 | T17 | 2 | 컷 | T2 | 1 | T6 | T4 | 불참 | T21 | T32 | 불참 | 컷 | 불참 | 불참 | 컷 | T21 | 컷 | 불참 | 불참 | |
디 오픈 | T68[307] | T22LA | T24 | 3 | T7 | 1 | T25 | T28 | T4 | T9 | 1 | 1 | T12 | 불참 | 컷 | T23 | 불참 | T3 | T6 | 69 | 컷 | 불참 | 불참 | T6 | 컷 | 취소 | 불참 | 컷 | |
PGA 챔피언십 | 불참 | 불참 | T29 | T10 | 1 | 1 | T29 | 2 | T39 | T24 | T4 | 1 | 1 | 불참 | 2 | T28 | 컷 | T11 | T40 | 컷 | 컷 | 불참 | 불참 | 2 | 컷 | T37 | 불참 | 기권 |
LA = 로우 아마추어
DNP = 불참
WD = 부상으로 기권
CUT = 컷
T = 타이
녹색은 우승. 노란색은 상위 10위.
4. 1. 메이저 대회
wikitext대회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
마스터스 | T41LA | 컷 | 1 | T8 | T18 | 5 | 1 | 1 | T15 | T22 | 1 | T3 | T2 | 2 | T6 | T4 | T4 | T40 | T4 | 불참 | T17 | 불참 | 불참 | T32 | 1 | T38 | 불참 | 47 | 기권 |
US 오픈 | 기권 | T82 | T19 | T18 | T3 | 1 | T12 | 1 | T20 | T17 | 2 | 컷 | T2 | 1 | T6 | T4 | 불참 | T21 | T32 | 불참 | 컷 | 불참 | 불참 | 컷 | T21 | 컷 | 불참 | 불참 | |
디 오픈 | T68[307] | T22LA | T24 | 3 | T7 | 1 | T25 | T28 | T4 | T9 | 1 | 1 | T12 | 불참 | 컷 | T23 | 불참 | T3 | T6 | 69 | 컷 | 불참 | 불참 | T6 | 컷 | 취소 | 불참 | 컷 | |
PGA 챔피언십 | 불참 | 불참 | T29 | T10 | 1 | 1 | T29 | 2 | T39 | T24 | T4 | 1 | 1 | 불참 | 2 | T28 | 컷 | T11 | T40 | 컷 | 컷 | 불참 | 불참 | 2 | 컷 | T37 | 불참 | 기권 |
LA = 로우 아마추어
DNP = 불참
WD = 부상으로 기권
CUT = 컷
T = 타이
녹색은 우승. 노란색은 상위 10위.
4. 1. 1. 우승 (15회)
년도 | 대회 | 54홀 | 스코어 | 타수 차 | 준우승 |
---|---|---|---|---|---|
1997 | 마스터스 토너먼트 | 9타 리드 | −18 (70-66-65-69=270) | 12타 차 | 톰 카이트 |
1999 | PGA 선수권 대회 | 타이 | −11 (70-67-68-72=277) | 1타 차 | 세르히오 가르시아 |
2000 | US 오픈 | 10타 리드 | −12 (65-69-71-67=272) | 15타 차 | 어니 엘스 미겔 앙헬 히메네스 |
2000 | 브리티시 오픈 | 6타 리드 | −19 (67-66-67-69=269) | 8타 차 | 토마스 비욘 어니 엘스 |
2000 | PGA 선수권 대회 | 1타 리드 | −18 (66-67-70-67=270) | 플레이오프 | 밥 메이 |
2001 | 마스터스 토너먼트 | 1타 리드 | −16 (70-66-68-68=272) | 2타 차 | 데이비드 듀발 |
2002 | 마스터스 토너먼트 | 타이 | −12 (70-69-66-71=276) | 3타 차 | 레티프 구센 |
2002 | US 오픈 | 4타 리드 | −3 (67-68-70-72=277) | 3타 차 | 필 미켈슨 |
2005 | 마스터스 토너먼트 | 3타 리드 | −12 (74-66-65-71=276) | 플레이오프 | 크리스 디마르코 |
2005 | 브리티시 오픈 | 2타 리드 | −14 (66-67-71-70=274) | 5타 차 | 콜린 몽고메리 |
2006 | 브리티시 오픈 | 1타 리드 | −18 (67-65-71-67=270) | 2타 차 | 크리스 디마르코 |
2006 | PGA 선수권 대회 | 타이 | −18 (69-68-65-68=270) | 5타 차 | 션 미첼 |
2007 | PGA 선수권 대회 | 3타 리드 | −8 (71-63-69-69=272) | 2타 차 | 우디 오스틴 |
2008 | US 오픈 | 1타 리드 | −1 (72-68-70-73=283) | 플레이오프 | 로코 메디에이트 |
2019 | 마스터스 토너먼트 | 2타 뒤짐 | -13 (70-68-67-70=275) | 1타 차 | 더스틴 존슨 잰더 쇼펠레 브룩스 켑카 |
- 마스터스 토너먼트: 5승 (1997년, 2001년, 2002년, 2005년, 2019년)
- US 오픈: 3승 (2000년, 2002년, 2008년)
- 브리티시 오픈: 3승 (2000년, 2005년, 2006년)
- PGA 선수권 대회: 4승 (1999년, 2000년, 2006년, 2007년)
통산 15승으로, 잭 니클라우스의 18승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5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더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으며, 2008년 US 오픈에서 잭 니클라우스의 기록을 깨고 최연소 트리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4. 1. 2. 연도별 기록
wikitable대회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마스터즈 | T41LA | CUT | 1 | T8 | T18 |
US 오픈 | WD | T82 | T19 | T18 | T3 |
디 오픈 챔피언십 | T68[307] | T22LA | T24 | 3 | T7 |
PGA 챔피언십 | DNP | DNP | T29 | T10 | 1 |
대회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마스터즈 | 5 | 1 | 1 | T15 | T22 | 1 | T3 | T2 | 2 | T6 |
US 오픈 | 1 | T12 | 1 | T20 | T17 | 2 | CUT | T2 | 1 | T6 |
브리티시 오픈 | 1 | T25 | T28 | T4 | T9 | 1 | 1 | T12 | DNP | CUT |
PGA 챔피언십 | 1 | T29 | 2 | T39 | T24 | T4 | 1 | 1 | DNP | 2 |
대회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
매스터스 토너먼트 | T4 | T4 | T40 | T4 | DNP | T17 |
US 오픈 | T4 | DNP | T21 | T32 | DNP | CUT |
디 오픈 챔피언십 | T23 | DNP | T3 | T6 | 69 | CUT |
PGA 챔피언십 | T28 | CUT | T11 | T40 | CUT | CUT |
LA = Low Amateur(아마추어 최고 성적)
DNP = 불참
WD = 기권
CUT = 컷 탈락
"T" = 공동
4. 2. PGA 투어
타이거 우즈는 PGA 투어에서 통산 82회 우승을 기록했다.[180] 이는 샘 스니드와 함께 최다 우승 공동 1위에 해당한다.시즌 | 우승 (메이저) |
---|---|
1996 | 2 |
1997 | 4 (1) |
1998 | 1 |
1999 | 8 (1) |
2000 | 9 (3) |
2001 | 5 (1) |
2002 | 5 (2) |
2003 | 5 |
2004 | 1 |
2005 | 6 (2) |
2006 | 8 (2) |
2007 | 7 (1) |
2008 | 4 (1) |
2009 | 6 |
2012 | 3 |
2013 | 5 |
2017-18 | 1 |
2018–19 | 1 (1) |
2019–20 | 1 |
통산* | 82 (15) |
4. 2. 1. 우승 (82회)
타이거 우즈는 PGA 투어에서 통산 82회 우승을 기록했다.[180] 이는 샘 스니드와 함께 최다 우승 공동 1위에 해당한다.시즌 | 우승 (메이저) |
---|---|
1996 | 2 |
1997 | 4 (1) |
1998 | 1 |
1999 | 8 (1) |
2000 | 9 (3) |
2001 | 5 (1) |
2002 | 5 (2) |
2003 | 5 |
2004 | 1 |
2005 | 6 (2) |
2006 | 8 (2) |
2007 | 7 (1) |
2008 | 4 (1) |
2009 | 6 |
2012 | 3 |
2013 | 5 |
2018-19 | 1 (1) |
2019-20 | 1 |
통산* | 82 (15) |
4. 2. 2. 연도별 기록
횟수10
25
순위